강지현
Q&A
Q. 작가님을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일상의 온기를 푸른 빛으로 담아내는 작가 강지현입니다.
저는 현재 살아가고 있는 장소를 관찰하며 구체적인 형상을 계속해서 화면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세월의 흔적으로 때가 탄 건물을 화면에 정교하고 치밀하게 새겨 넣고 있어요. 섬세하게 그리지만 사진처럼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저만의 감성을 담아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심리적 치유와 온기를 전해주는 빛을 중점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빛으로 번진 세상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현실의 풍경을 빛에 의해 따뜻한 감정을 지닌 이상적인 풍경으로 담아내는 것입니다.
Q. 작가님의 작품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푸른 온기
Q. 어디에서 영감을 얻고 어떤 식으로 작품을 만드시나요?
저의 시간과 추억을 간직한 일상 풍경은 위안과 온기를 전해주는 공간입니다. 신식 건물보다는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오래된 건물에 더 애정이 생기게 되었고, 시간의 흔적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건물에 새겨진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오래된 건물만이 가지고 있는 특색을 찾아내다 보면 그 공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게 되고 그러한 마음이 작업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특정 장소에 대한 애정과 유대감을 느끼면서 이를 작품 속에 장소성으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 공간은 저녁이 되면 다양한 불빛들과 함께 하며 생동감 넘치는 세상으로 변합니다. 이것은 저에게 새로운 미적 감흥을 주며 빛을 통해 이상 세계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초저녁의 가로등과 창문의 불빛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주는 소재입니다. 과거의 추억과 기억, 경험이 불빛으로 가득한 골목길을 통해 되살아나고 그 과정에서 아늑하고 따뜻한 에너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빛의 반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시각화하여 그 속에서 제가 느꼈던 위안과 온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초저녁이 되면 창문에선 따스한 불빛이 하나 둘씩 새어 나오고, 빛으로 거리를 수놓으며 자신들의 존재를 밝힙니다. 그곳에서 한참을 보고 있으면 여러 불빛들은 저와 무언의 교감을 청하는 듯 합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빛을 더욱 발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강한 생명력을 느꼈습니다.
작품을 창작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일상풍경을 몸소 체험하는 것을 바탕으로 합니다. 현실적 공간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해 현장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실재성을 화면에 담아내고자 합니다. 일상의 이미지들을 수집하기 위해 을지로와 동네 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시간대별로 변화되는 풍경의 모습을 사진 찍으며 기록합니다. 수집한 사진을 토대로 하여 사실적인 대상의 모습들에 제가 그 장소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더하여 작품 속 풍경을 그려나갑니다.
Q. 주로 사용하시는 표현 방법과 스타일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월의 흔적으로 때가 탄 건물을 화면에 섬세하게 새겨 넣고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작업 성향은 정교하고 치밀하게 그리는 것입니다. 섬세하게 그리지만 사진처럼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본인만의 감성을 담아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장지에 먹과 분채, 석채를 사용하여 여러 번 덧칠하여 채색하는 장지 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또 다른 세상에 온 듯한 환영을 만들기 위해 청색과 녹색을 사용하여 화면을 구성합니다.
Q. 지금까지 해오신 작품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어떤 건가요?
<푸르게 덮인 온기>는 300호 작품으로 대학원을 졸업하기 전에 완성했던 작품이에요. 사전 조사 기간과 작업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 작품이어서 그런지 다른 작품보다 애정이 많이 가는 것 같아요.
화면에서 보여지는 을지로는 저녁 무렵의 영롱하고 아련한 불빛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거대한 빌딩 숲 사이로 보이는 정감 있는 을지로는 마치 비밀의 정원과 같이 시간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저에게 을지로는 가족의 안식처이자 삶의 터전이에요. 아버지의 평생 일터인 을지로 4가 조명골목 일대는 저의 깊숙한 기억과 가장 가까운 장소이기도 해요. 저와 가족들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의 추억과 사연이 담긴 공간인데, 이렇게 쌓여진 추억들이 끊임없이 피어오르면서 현재로 스며드는, 시간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곳곳에 스며든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 돌아다니면서 제가 느낀 감정은 따뜻함이었어요. 재개발로 밖은 많이 변했지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던 골목길은 과거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그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선 열정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밤이 깊어갈수록 빛을 더욱 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명력이 강한 장소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멀리 보이는 신식 건물들의 화려한 조명들과 앞의 오래된 건물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함께 빛나고 있어요. 이러한 모습들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도록 세운상가 옥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그렸습니다.
지금 을지로는 재개발로 인해 그림에서 보이는 풍경들 대부분이 사라지고 있어요. 서로의 삶이 배인 낡은 공간은 언젠가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들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도시의 변화와 마주하며 그것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이미지로 구축해 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평범한 일상을 다시 되돌아보고 그 속에 존재하고 있는 대상들의 가치를 재발견하고자 합니다.
Q. 작품의 색감은 어떤 의미이며, 작품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나요?
저에게 청색은 환영과 이상, 생명력, 따뜻함의 의미로 나타납니다. 현실 속에서 또 다른 세상에 온 듯한 환영을 만들기 위해 군청과 파랑을 사용하여 이상적인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주로 청색과 노란색의 색채 대비로 화면을 구성합니다. 푸르게 덮인 밤 풍경에 노란 불빛을 새겨넣음으로써 서로를 강조하게 만들고 온기와 따뜻함을 지닌 풍경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청빛 풍경은 초록 빛 무리, 그리고 금빛 잔상으로 이어집니다. 청색으로 덮인 밤과 노란빛이 섞여 만들어지는 희미한 녹색 빛은 화면에 가득하게 차오릅니다. 기존의 청색 밤 풍경과는 다르게 좀 더 이른 저녁 풍경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자연조명과 인공조명이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 그 풍경에는 뚜렷한 그림자의 흔적과 빛의 잔상이 드러납니다. 불분명한 시간의 경계 속에서 건물을 둘러싼 풍경은 낮의 따뜻한 햇살을 보여주는 듯, 오후의 나른한 조명 불빛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밤이 깊어지기 전에 싱그러운 빛들의 조화를 초록빛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Q. 창작 활동을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적은 언제였나요?
작품을 완성하거나 전시를 마친 후에 오는 성취감과 뿌듯함이 저에겐 다음 작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작품을 좋아해주시고 위로를 받으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전시를 하면 할수록 더 욕심이 생기고 더 열심히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슬럼프를 겪으신 적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작업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받고,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아요. 그림이 잘 안그려질때면 작업 속도도 느려지고, 결국엔 완성되는 기간이 길어져요. 저한테 제일 큰 스트레스는 작업 완성 시간이 길어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 그림을 쉬고 영화를 보거나 잠을 잤는데, 차라리 그림을 빨리 완성하고 쉬는게 나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마음에 안드는 그림을 수정하고 고쳐서 완성까지 하는 편입니다. 저한테는 눈 앞의 문제를 빨리 풀어나가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작업 방향은 어떻게 되시나요?
작년부터 새롭게 시작한 작업에서는 녹색에서 노란빛으로 이어지는 화면을 보여주었어요. 앞으로도 푸른색에서 점차적으로 색상을 변화시키면서 다양성을 주고자 합니다. 낮과 밤의 경계를 담으면서 빛으로 연결되는 풍경을 보여줄 것입니다. 장소의 소재 또한 계속해서 확장시켜 나갈 계획이에요. 제가 경험한 모든 장소들이 화면 속 주인공이 된다면 그만큼 풍부하고 재미있는 작업이 나올 것 같아 기대됩니다. 소재가 다양해지는 만큼 재료도 다양하게 시도해서 새로운 이미지로 나타내고자 합니다.
Q. 작업 공간은 어디에서 주로 하시며, 그 공간은 작가님에게 어떤 곳인가요?
작업실은 따로 없고 집에서 작업을 합니다. 방을 작업실로 만들고 거의 하루종일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제가 창문 너머로 탁 트인 풍경이 보이고 햇살이 잘 드는 공간을 좋아하는데, 대학교 다닐 때의 과실을 벗어나서 지금의 작업 공간에서 그림을 그릴 때 정말 좋았어요. 과실은 제 자리와 창문이 멀어서 밖을 볼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동네의 사계절 풍경이 뚜렷이 볼 수 있는 공간이어서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창 밖 풍경을 항상 기록하고 작업으로 이어가려고 하고 있어요. 이렇게 저한테는 너무 평온하고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어서 작업할 때도 좋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Q. 작업을 하실 때 작가님만의 루틴이 있나요?
아침을 먹고 차나 커피를 마시면서 작업을 시작해요. 항상 라디오를 들으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나서 보통 새벽 3-5시까지 작업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루틴으로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Q. 대중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저는 사소하지만 누군가에는 가치 있고 그들만의 역사성을 간직한 공간들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기록을 해왔던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가 그리고 있는 공간들은 언젠가는 새로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잖아요. 제 작품은 이미 사라진 과거의 흔적일 텐데, 그 흔적을 통해 의식에 여전히 남아 있는 당시의 장면을 회상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Q. 작품활동 외에 취미활동이 있으신가요?
영화를 보거나 평일 낮에 카페 가는 것을 좋아해요. 취미라고 할만한 활동은 따로 하지 않고, 여유가 있을 때 햇살 가득한 공간에 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힐링합니다.
Q. 작가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2023년의 전시들을 열심히 준비하고 무사히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다양한 장소들을 경험하고 여행하면서 좀 더 풍부한 그림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AR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