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레이시
ARTIST TALK
추상페인팅을 하는 내게 작업을 시작하며 캔버스나 종이 화면에 다가서는 방법은 그 순간 내가 놓여있는 공간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비롯된다.
나의 손이 화면을 가르고 그 흔적을 남겨놓을 때 온전히 나의 존재를 감각한다.
이 때 내가 펼쳐 놓을 색과 떠오르는 형상은, 많은 경우 작업의 시간 전 내 시각에 들어와 주었던 것으로부터 나타나고는 한다.
이를테면, 이 페인팅은 계절이 바뀔 즈음 흩날리던 햇살, 반사되는 빛깔, 그 순간 흩뿌려지던 자연의 색들, 하얀 봄잎, 바람의 향, 이러한 것들이 내 손의 움직임과 함께 시작되었다.
내 작업은 본래의 것 본질을 직관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것은 나의 시각적 경험과 더불어 드러나게 된다. 이것을 ‘영감’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내 작업의 ‘영감’은 내가 보았던 아찔하고 특별했던 어쩌면 스쳐갈 법한 각 순간들이라 할 수 있고,
이것은 내 한 편에 남게 되어, 함께 하는 모든 누군가들과 연결을 꿈꾸며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나서 페인팅으로 표현되는 순간, 감각하는 것을 지나 다른 누군가들과 일체를 경험하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게 작업의 ‘영감’은 숨쉬는 각 순간 온전히 펼쳐진 세상을 마주했을 때 나오던 경탄에 있다.
하루는 전철을 타고 강을 건너던 중이었지. 창가 옆에 기대어 있던 터라 차창 너머 펼쳐지는 살아있는 풍경을 확연히 느낄 수가 있었어.
저녁 무렵 흩뿌려대는 빛깔이었을까 아니면 햇살이 강해 그 시간대 즈음으로 생각해 버린걸까. 정확히 하루의 언제쯤 이었던가를 기억해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아.
그보다 되려 그 순간이 무작정 떠올라서 지금도 그 시간만큼은 감각하게 돼.
하나의 빛깔이 여러 표정으로 하늘의 저편에서 흔들리는 물결위에 내려 앉던 것은 그때 그걸 보고 있는 나와 함께 동시에 숨쉬는 살아있는 모두를 느끼게 했어.
이토록 눈부시게 흩날리는 것들이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아서라고 하고 싶어.
매번 나는 낯선 시간을 마주하고 또 이미 알았던 순간인양 익숙해져.
손을 뻗어 휙 혹은 주욱 몸짓으로 그려내는 나의 선들은 캔버스 위 종이 위를 내달려.
그리고는 그 순간 이대로 ‘있음’을 전적으로 절대적으로 증명해버리고 말지. 나의 진심은 그어낸 선들과 쌓이는 층들 안에서 또렷해질 수 있어.
각 순간에 새겨진 ‘나’들은 마땅히 나를 지나고 넘어 다른 이들을 떠올리게 하지.
행위로 펼쳐내는 내 작업은 그래서 더불어 숨쉬는 모두를 향한 경탄을 내뱉어내고 연결을 꿈꾸게 해.
색으로 선으로 표현하는 내 작업은 그러니 타자를 향한 존중에 닿아 있어.
그러므로 또한 그들이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음을.
한 손을 들어 크게 휘저어 허공에 선을 그어 본다. 그 순간, 그대로 존재하는 나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나간 궤적의 옅어짐이 이미 있었던 것을 의심하게 한다 해도 행위는 지워지지 않고 그 자국은 그대로 남아있다.
어쩌면 이 가장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행위 그 자체는 이순간 내가 살아가고 존재함을 드러내 주는 데에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적절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직관의 결과이자 내면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 주는 선을 긋는 작업으로 나의 진심은 자연스레 표현되리라 믿는다.
선들의 결합과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되어 화면에 쌓여 올라가는 경험을 통해 내가 더욱 더 나 다워지고,
각 순간 각인된 ‘나’들의 조합을 마주했을 때 그것이 심지어 나 자신과 다름없더라 말하는 것은 따라서 과장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때때로 말을 통한 증명을 넘어 그보다 직관적인 방식으로써 존재를 확연히 드러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즉, 본질에 가까이 가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나 자신을 반드시 드러내려 애쓰지 않아도 순간의 진심들이 모였을 때
오히려 그 존재의 의미는 선명히 발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말하기 이전, 본래의 자리, 그 순간순간 속에서 구현되는 진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업을 해가면서 나자신을 마주하는 경험은 결국 자연스레 나 뿐 아닌 다른 이들의 순간 들에도 마음을 둘 수밖에 없게 한다.
이는 오로지 내존재에만 매몰되기보다는 안을 바라봄으로, 동시에 함께 존재하는 다른 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하고
따라서 내 작업 안에 공존의 무게가 놓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캔버스 위 선들을 그려 화면이 차근히 채워지는 작업으로 나의 페인팅은 완수된다.
나의 상상은 화면 안의 선들이 화면을 벗어나서도 그대로 연장되고 연결되며, 다시 돌아온 선들은 그대로 캔버스 위를 안착하게 되는데
각각의 선들이 만들어내는 형태는 생각을 통해 이미 상정해 놓은 지점을 찾아 만들어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직관적인 반응을 따라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오랜 기간 동안 새롭게 쌓일 층을 만들기 위해서 화면의 채워진 선들 위로 바탕색에 가까운 색으로 완전히 덮은 뒤 그 과정을 반복해 작업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여기다 더해 화면의 전체가 아닌 부분들을 덮고 그 위에 새로운 선들을 올려 층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것은 존재를 드러내는 각각의 순간은 순차적으로 일어나 쌓여 의미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각 순간안에 놓인 존재는 그 자체로 이미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하던 생각에 기인한 것이다.
각각의 순간이 한번에 드러나 캔버스 화면에 보일 때 그 안에 놓인 나를 비롯한 모든 존재를 떠올리고 동시에 연결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캔버스 위 직관적인 제스쳐로 표현되는 이 작업을 통해 나자신을 나타내어 보이는 것은 결국 존재하는 다른 모든 이들을 향한 존중에 닿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