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선
ARTIST TALK

Q. 안녕하세요! 작가님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금속을 주 재료로 작업하며, 바다에서 밀려온 해양 폐기물을 활용해 조명 및 다양한 오브제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
금속공예작가 이혜선입니다. 버려진 것들이 다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Q. 작가님의 작품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제 작업을 “선순환 된 조각들” 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해변에서 마주친 부표, 낚시찌, 그물 조각 같은 것들은 처음엔 그저 쓰레기로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련의 시간과 여정을 통과해 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거든요. 그게 조명이든, 작은 구조물이든, 벽에 걸 수 있는 설치든 형태는 다양하지만, 중심에는 늘 “한때 버려졌던 것들이 다시 의미를 갖게 되는 과정”이 있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이 작업들이 단지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라, 흔적을 기억하고, 쓰임을 회복시키는 일처럼 느껴져요.
Q. 금속 공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예전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금속공예를 접하게 되었는데, 금속은 다루면 다룰수록 매력을 느끼게 되는 재료였어요.
금속 자체는 단단한데, 불을 사용하면 부드럽게 변하기도 하고, 재료를 망치로 다양한 형태를 만들거나 섬세한 표현도 가능하고, 시간이 지나 표면이 산화('에이징'이라고도 칭함)되면 작업 안에 시간이 담기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금속은 하면 할수록 요행을 바라지 않고 차근차근 제작 과정을 밟아 나가야 결과에 다다르게 되거든요. 익숙해졌다고 대충 하거나, 과정을 건너뛰면 꼭! 큰코다칠 일이 생기곤 하죠.
결국 내가 혼자 만든 게 아니라 금속과 내가 함께 만들어간다는 그 감각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금속 공예에 빠지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네요.
Q.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저는 특정 장소에서 영감을 받기보다는, 반려견과 자연으로 나가 산책을 할 때, 생각이 정리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편이에요.
작업실에만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제 작업 안에 갇히게 되고, 시야가 좁아지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잠시 밖으로 나가 멀리 풍경을 바라보거나 주변 소리에 집중해보면, 오히려 머릿속이 정리되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곤 해요.
직접 바다에 가서 비치코밍(해변을 걸으며 바다에 떠밀려온 물건을 수집하는 일)을 하는 것도 단순히 재료를 모으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제 작업의 방향을 다시 바라보기도 하고, 묵은 생각들을 환기시키는 시간이 되기도 해요.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얻는 감각들이 제 작업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Q. 작가님의 작업 공간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작업실이 바닷가와는 거리가 있는 경기도에 위치해 있지만, 작업의 주제가 바다와 관련되어 있어서인지 종종 바닷가 근처에 있는 줄 아시는 분들이 많아요. 실제로는 조용한 동네, 공원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어요. 아침마다 강아지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작업실로 향하는 것이 저의 일상 루틴입니다.
작업실은 공간 자체는 크지 않지만, 금속공예에 필요한 집기들이 있어요. 작업책상(금속 작업 전용), 불대(불 작업을 위한 작업대), 집진기, 모루(대장간 등에서 사용하는 금속 성형 도구)등 제 작업에 필요한 도구들과 작은 기계들이 갖춰져 있어 큰 불편함 없이 작업하죠.
바다에서 수집한 플라스틱 재료들은 상자에 담아 보관하거나, 따개비가 붙어 있거나 형태가 흥미로운 것들은 따로 오브제처럼 진열해 두고 있기도 해요.
최근에는 작업 공간을 조금 더 확장해볼 계획도 하고 있고, 여건이 된다면 오픈스튜디오 형태로 작업실을 개방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Q. 바다 쓰레기를 활용한 작업을 주로 이어 오셨는데, 처음에 이 주제를 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2016년에 제주도에서 바다쓰레기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그룹전에 참여하면서, 해양 폐기물들과 처음 마주하게 됐어요. 사실 처음엔 환경이나, 업사이클에 대한 생각보다는 전시를 위한 작품 제작 정도로만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플라스틱과 금속을 조합하는 작업 자체가 흥미롭게 다가오더라고요.
바다쓰레기의 주가 되는 어업폐기물들은 주로 기능에 의해 만들어진 형태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색다른 형태도 재미있었고, 금속공예를 하면서 접하지 못했던 ‘색’의 다양함, 거기에 바다와 햇빛에 바랜 플라스틱, 부서진 조각들… 그렇게 버려진 결과물들이 어떤 건 너무나 인공적이고, 또 어떤 건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보였어요. 그런 이질적인 것들이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로 재활용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쓰레기들을 보며 ‘이건 분명 다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작업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하고 있죠.
Q. 작품 제작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작업은 바닷가를 걸으며 재료를 수집하는 것부터 시작돼요. 해변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조각들 중 형태나 색감이 흥미로운 것들을 고른 뒤, 전체적인 형태를 구상하고 세부적인 디자인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초기에는 재료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가공 도중 플라스틱이 삭아버리거나 의도와 다르게 변형되는 등의 변수들을 많이 겪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구상과 재료 선택의 순서를 좀 더 유연하게 조율하고 있어요.
어떤 경우에는 꼭 사용하고 싶은 플라스틱 조각이 있어서 그 재료에 맞춰 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반대로 구상한 디자인에 어울리는 재료를 나중에 찾아보기도 해요.
금속은 주로 열을 이용한 성형이나 접합 기법을 쓰고, 플라스틱은 열에 약하기 때문에 두 재료를 함께 쓸 때는 ‘콜드 조인트(Cold Joint)’ 방식 — 예를 들면 나사, 리벳, 경첩 등을 이용한 접합법— 을 사용해요. 조명 기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전체 구조나 세부 요소를 미리 설계한 뒤, 금속과 플라스틱 부분을 각각 제작하고 마지막에 조립하죠.
완성된 작품은 조명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때론 오브제의 형태로 마무리되기도 해요. 형태는 매번 조금씩 달라지지만, 중심에는 늘 ‘다시 쓰임’이라는 주제가 자리하고 있어요.
Q. 작업할 때 고민이 많은 점은 어떤 부분인가요?
저는 작업을 할 때 형태적인 완성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제 작업 스타일은 비교적 기하학적이고 대칭적인 구조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균형 잡힌 형태에서 오는 안정감과 명확한 질서감을 좋아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 기준이 저 스스로에게 제약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특히 제가 주로 사용하는 바다 플라스틱은 이미 자연과 사람의 손을 거쳐 형태가 만들어져 있는 재료들이잖아요. 그걸 다시 분해하고 가공한 뒤 조합하는 과정에서, 제가 원하는 형태를 정확히 구현하는 데 한계가 생기기도 해요. 오히려 그 불완전한 조각들 속에서 새로운 조형의 가능성을 찾아야 하다 보니, 처음에는 형태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조금 더 유연한 시각으로 재료를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형태를 만들어가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이미 주어진 조각들이 가진 흐름과 리듬을 읽고, 그 안에서 균형과 조화를 찾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어요.
Q. 지금까지 해오신 작품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그동안 바다 쓰레기를 활용한 작업을 이어오면서 인상 깊은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22년 <속초 칠성조선소>에서 진행한 전시(아래)였어요.
그 공간이 층고가 무려 10미터나 되는 넓고 탁 트인 구조였는데요, 처음 전시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여기서는 뭔가 큰 스케일의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기존에 하던 크기에서 벗어나, 천장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대형 샹들리에 작업을 시도했어요. 작업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금속 파트와 플라스틱 파트를 따로 제작해야 했고, 현장에서 조립하고 설치하는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 전혀 예상이 안 되니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설치 전에 작업이 망가지는 악몽까지 여러 번 꿨을 정도였어요.
설치 당일, 학교 후배들과 함께 조선소에 가서 작품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듯 완성해가는 그 순간은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마침내 형태를 갖춰가는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희열과 뿌듯함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리고 전시를 준비하며 후배들과 함께한 1박 2일의 여정도 참 따뜻하고 소중했어요. 작업을 같이 만들고 설치하면서 생긴 연결감이나, 그 현장의 분위기 덕분에 이 작업은 제게 특히 특별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Q. 최근에 관심을 갖고 계신 주제는 무엇인가요?
제작년에 한 달 살이로 제주에 머물렀을 때였어요. 어느 날 해변을 걷다가 정말 무수히 많고, 아주 작은 플라스틱 파편들과 마주하게 됐어요. 그동안 미세 플라스틱에 대해 말로만 들었지, 이렇게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되니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걸 체감하게 되더라고요. 파편들은 너무 작아서 하나하나 집어 들기도 힘들었고, 원래 어떤 물건이었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많이 부서져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조각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제가 그동안 붙잡고 있던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일정한 구조나 균형감 있는 형태를 추구하던 저였지만, 이 작은 파편들은 오히려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으로 느껴졌거든요. 무언가를 조합하고 형을 맞추기보다는, 그저 흘러간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덩어리 자체가 하나의 조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요즘은 그런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에 더 눈길이 가요. 물론 모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그 시간들이 쌓여 또 다른 작업의 흐름을 만들어줄 거라고 믿고 있어요. 결국 그 조각들을 모으는 시간이, 저에게도 어떤 흔적이자 축적이 되는 셈이겠죠.
Q. 금속 공예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해주실 팁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가 금속 작업하면서 늘 되새기는 말이 하나 있어요.
“망치면 고치려고 애쓰지 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오히려 빠르다.”
망친 걸 고쳐보려고 애쓰는 시간에 새로운 걸 벌써 만들어내고도 남는 경험에서 우러러 나오는 말이죠.
작업을 하는 과정 중에서 작은 실수나 빼먹은 것들이 나중에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처음 단계부터 꼼꼼히, 그리고 차근차근 진행해야 하는 분야예요. 처음엔 티가 안 나더라도, 완성 직전에 꼭 문제가 되어 튀어나오곤 하거든요.
금속공예가 사실 단기간에 뚝딱 해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 기본적인 손 기술은 물론이고, 기계나 불을 다루는 필수적인 기법들도 익혀야 하다 보니,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조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시간을 들여 만든 결과물에서 오는 성취감은 정말 크답니다. 완전히 나만의 속도로 쌓아 올린 결과라는 게 분명하게 느껴지니까요.
그래서 저는 금속공예를 시작하려는 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당장은 더디고 시행착오도 많겠지만, 절대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견뎌 보시라고요.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 두 배, 아니 그 이상으로 성취감을 느끼게 되실 거예요.
Q. 대중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다시 쓰임을 제안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버려진 것, 필요 없어졌던 것들도 다시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고, 그게 꼭 거창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어요.
사실 제가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정말 활동적으로 실천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닐까요.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제가 풀어내는 작업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어떤 ‘기억’이나 ‘계기’로 남는다면, 그것 만으로도 제 역할은 충분하다고 느껴요. 결국 그 관심이 이어지고, 더 많은 쓰임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면 그걸로 저는 만족해요
Q. 마지막으로 미래의 자신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가끔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면, 결국 미래는 너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거라는 걸 잊지 마.
속도가 느릴 수는 있어도,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거. 그리고 그만큼 진심을 다해, 지금처럼 성실히 해나가야 한다는 것도 꼭 기억하자.
작은 조각들이 쌓여서 결국 하나의 큰 형태가 되듯이, 지금의 시간들도 분명 언젠가 너만의 빛으로 이어질거야.